인사말 저서소개 컬럼
그것은 예배였습니다

지난 주간에 동역자들의 요청에 따라 병실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이렇게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직접 심방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이렇게 요청이 오면 가능한 한 시간을 만들어 심방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래서 이번에도 심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심방을 한 경우는 특히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유는 그 병이 너무 깊고 오래되었거나 혹은 너무 위중해서 건강하게 회복될 가능성이 많지 않은 그런 안타까운 경우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 주님의 기적적인 역사하심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중심으로는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하지만, 인간적인 연약함으로는 그렇게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정말 마음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심방을 하면서 문득 마음속에 떠오른 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윤동주 시인이 쓴 ‘팔복’이라는 시였습니다. 제목을 팔복이라고 하고 이어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여덟 번 반복한 후에 마지막에 한 줄 띄우고는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그런 시였습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윤동주 시인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뭐 이런 것이 있나 싶은 황당함과 또 너무 절망적인 감상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한 느낌뿐이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이것이 떠오르면서 새로운 깨달음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어쩌면 신앙의 사람에게는 이렇게 슬퍼하는 것 자체가 신앙의 모습일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그렇게 슬퍼하면서도 그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 영적인 복일 수도 있겠다.’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온 것은 병실을 심방해서 그 어려운 상태에서도 정말 있는 힘을 다하여 살아내고 있는 그 성도님들을 보면서 성령님이 제 마음에 이들은 그렇게 아프고 그러면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서 그들이 남길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 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그런 감동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별로 없지만 천국의 소망과 영생의 그 약속을 붙들고 이곳에서의 시간을 얼마가 되었든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귀한 믿음의 모습이라는 그런 깨달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팔복이라는 시가 새롭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꽃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어려움과 힘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앙은 그런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그 삶에서 빼버리고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한복판을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을 다 신앙이 되게 하고 예배가 되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골짜기도 길이고, 바위투성이의 거친 곳도 길이고 수렁도 길인 것처럼, 그런 곳을 통과하면서 거기에서 넘어졌다가 일어서고 그러면서 상처도 입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가는 그 모든 것이 영적인 여정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병실에서 그 아픔과 절망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게 예배하고 있는 귀한 성도님과 그 가족들을 보면서 저는 이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위대한 예배자들을 뵙고 와서, 유진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