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가족들을 다 데리고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할 때 개척한 교회가 20주년이 되어서 그 교회에서 집회를 해야 하는 일정에 맞추어 아이들도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할 겸, 15일간의 만만치 않은 여행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돈도 시간도 무엇보다 수고도 많이 해야 했던 그런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내내 저를 흔들었던 것은 ‘이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수고와 고생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그런 근본적인 회의가 계속 들었던 것이지요.
아마 이런 갈등은 자기 가족들을 책임지고 있는 아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뜻 저와 이번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라본이를 미국에 있는 외할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인사를 시켰으니까…’라는 저와 똑같은 답을 중얼거리듯이 이야기하고는 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과 의미는 한국에서 태어난 증손녀를 미국에 계시는 90이 다 된 증조 외할머니에게 인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능한 한 최소한이라도 맺어주고 묶어주는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정작 당사자들이 기억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증조 외할머니는 노인성 치매로 단기 기억이 많이 상실되셔서 보고도 금방 잊어버리시고, 증손녀 딸은 이제 14개월 된 어린 아기이어서 기억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가 보니 여전히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가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성령께서 제 마음에 주신 감동은 ‘기억을 못 한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기억하고 느끼는 것에 달려 있지 않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한 그 사실에 근거한 것과 같이, 비록 증 외손녀 딸을 만나보고 품에 안아 본 그 기억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귀한 축복을 받은 사실을 증조 외할머니는 그 삶 가운데 누린 것이고, 너무 어려서 증조 외할머니를 뵌 기억은 없을지라도 자신의 삶에서 4대의 뿌리를 뵙고 인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라본이의 삶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그런 축복과 은혜가 될 것이라는 감동이었습니다.
여전히 ‘일 년을 더 기다렸다가 라본이가 좀 더 자라서 무엇을 좀 알 때 그때 갔어야 했나?’라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일 년 뒤에는 어쩌면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번에 이렇게 무리를 한 것이 잘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비록 기억을 못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은혜는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니까요.
축복의 사실을 부여잡으면서, 유진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