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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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몰락과 하나님의 구원 - 2019/11/24

작성자
hosannaho
작성일
2019-11-24 08:58
조회
1595
우상의 몰락과 하나님의 구원

( 본문 : 이사야 46:1~13 )

본문 배경

넓은 측면에서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서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 하나님의 권능, 그리고 선민의 회복이 주제입니다. 좁게는 우상 숭배자에 대한 심판의 경고와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는 유일 신앙에 대한 권고를 중점적으로 말합니다. 앞서 44-45장에서 하나님만이 참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증거 하면서 우상의 허무함과 우매함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어서 본문 전반부(1-7절)에서는 우상의 허무함에 대한 실제적인 예로 바벨론 제국의 우상인 벨과 느보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향하여 우상의 허무함을 일깨우면서 우상에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후반부(8-13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고레스를 통하여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포로 상태에 있던 백성들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무능하고 허망한 것을 신으로 섬기는 바벨론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불어 우상 숭배로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씀과 나눔

<질문1> 이사야는 바벨론의 대표적 우상인 벨과 느보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까? (1)

엎드려졌고 구부러졌도다.

(설명) ‘벨’은 ‘주(主)’, ‘주인’ 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하늘의 신으로서 모든 신들의 아버지로 여겨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벨론 최고의 신인 ‘마르둑’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느보’는 ‘벨’의 아들로 여겨졌으며, 문자적으로 ‘대변자’, ‘말하는 자’라는 의미로써 지혜와 문학을 관장하는 신이었습니다. 본문 1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벨과 느보에 대해 엎드려졌고, 구부러졌다고 예언합니다. 이 두 표현 모두 적에게 사로잡힌 전쟁 포로가 상대방에게 항복하는 모습 또는 신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바벨론의 신들의 철저한 패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우상들이 철저하게 무능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cf. 이사야 44:9)

이런 교훈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말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결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당대 최고의 나라인 바벨론의 최고의 우상이 이렇게 헛되고 허무한 것이기에, 모든 우상을 섬기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당시의 최고 강대국인 바벨론의 최고의 우상들이 이렇게 무너질 것이므로 우상들 때문에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소망을 가지고 힘을 내라는 격려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이 말씀을 주시는 주된 의도입니다.

<질문2> 사람들은 자신들이 준 금과 은으로 도금장이가 만든 우상에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6,7)

엎드려 경배함(6), 부르짖음(7)

(설명) 이사야는 우상의 헛됨과 무능함에 대해 지적합니다. 그런데 우상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당시로 볼 때에는 정말 놀라운 깨달음인, 그러나 사실은 당연한 사실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우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 우상은 사람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처음부터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우상에게 부르짖어도 우상은 결코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있지 않기에 움직이지 않고 어떤 역사도 할 수 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외면하고 어떤 역사가 있다는 식으로 스스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우상의 무능함을 지적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cf) 하박국 2:18; 시편 96:5

나눔 1) 내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만든 우상은 무엇이며, 혹은 내 삶에 제거해야 할 우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질문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옛적 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을 두 번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9)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설명) 9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옛적 일을 기억할 때에, 이 세상의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옛적 일’이란 하나님께서 모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의 역사, 즉 출애굽과 암몬, 블레셋, 앗수르 등으로부터 구원받은 사건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원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진정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9절에 표현된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라는 동일한 의미의 말이 두 번 반복하며 매우 강조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앞선 45장에서는 무려 여덟 번이나 반복되면서 강조되었던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결국 본 절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오직 한 분 뿐 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됨을 깨달아야 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인이 혼동스럽고 힘든 상황에서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최고의 영적인 비법입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라는 것을 붙드는 것은 속이고 혼동시키는 마귀의 궤계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처방인 것입니다.

<질문4> 하나님은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면서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12,13)

나의 영광

(설명) 12절에 ‘완악하여’이라는 말은 마치 황소가 완강히 버티듯이 고집대로 행하려는 경우에 쓰이는 말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을 고발하면서 책망하시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말씀에서 강조하는 단어는 ‘공의’입니다. 죄 지은 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공의입니다. 즉, 죄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공의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의와 전혀 다른 반대편의 단어를 또 하나 쓰고 계신데 그것이 ‘구원’입니다. 죄를 심판하는 것이 공의이지만, 구원은 죄인을 심판에 처하게 하지 않고 살려주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하나님의 또 다른 성품이신 사랑에 근거한 것이며, 이것은 은혜와 긍휼로 표현됩니다. 이스라엘을 ‘나의 영광’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훌륭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영광’이라고 하시는 말씀 속에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 공의로 그들을 심판하시는 쪽으로 가시지 않고,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결심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나눔 2)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런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기도하나님 말씀 앞에 완악하고 불순종했던 모습을 회개하고, 오직 신실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첨부파일 : 20191124-soonjang.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