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이 토요일이어서 지난 주간에 언제 부모님을 뵈러 갔다 올지를 놓고 마음에 조금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일이 지나고 다녀와야 하겠다 했는데, 아버님이 ‘형도 온다고 했는데’ 하시면서 설날 당일에 왔으면 하셔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형님이 선교사로 나가 있어서 명절에 함께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마침 안식년이어서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표현은 안 하시지만, 아버님이 자녀들이 다 함께 모이는 것을 너무 원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도 있지만, 저도 형님을 이번에 만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님이나 저나 사역자로 마지막 트랙을 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형님을 만날 생각을 하면서,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은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형이 5학년이었던 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때 어머니가 김장을 하실 때이어서 밥을 해주실 수 없다고, 처음으로 생소한 삼양라면 두 봉지를 사다가 주시면서 형하고 저에게 직접 끓여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형제가 코를 훌쩍거리면서 그 조리법에 나와 있는 대로 열심히 끓여서 먹었는데, 그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렇게 라면을 먹고는 형제가 방에 드러누워서 ‘이다음에 커서 돈을 벌면 라면을 실컷 사서 끓여 먹자!’ 했던 그 대화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형제가 나누었던 최초의 비전 공유(vision sharing)이었고, 장래 설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대화가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은 그때 그렇게 말하면서 정말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삶을 산다는 것이, 커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정말 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형님을 만날 생각을 하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때 커서 라면을 실컷 끓여 먹고 싶었던 만큼 우리는 살았는가? 그렇게 갈망하고 원하던 것을 이루며 살았는가?
아직 우리의 삶은 진행형이기에 결론을 내리거나 판정을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가 원하고 갈망하는 것 이상으로 복되게 살았다고 고백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가 원하고 갈망했던 것을 다 하고 살지는 못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라면을 실컷 끓여 먹는 것처럼 우리가 갈망했던 그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 것임을 확인하면서 갈팡질팡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갈망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인도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이번에 형님을 만나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비전 쉐어링은 라면 끓여 먹기는 아닐 것이고…, 아마 어떻게 끝까지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름답게 삶의 자리를 지키며 마무리할 것인가 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때 라면을 실컷 먹자고 했을 때처럼 가슴이 뛰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형제가 같은 삶의 소망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더 깊은 감동이 와서 참 행복했습니다.
형제가 삶의 비전을 나누는 생각을 하며, 유진소 목사